김규항과 서준식의 대담 중


김규항 :

난 선생이 그저 강고한 맑스주의자인 줄로만 알았다가

예수에 대한 이해가 깊은 것을 알고 놀랐다.

어쩌다 인민의 아편을 가까이 하게 되었는가.


서준식 :

감옥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는데 읽을 거리가 없었다.

중국 대륙에서 나온 책들은 들어올 수가 없고 대만에서 나온

《리더스 다이제스트》 같은 건 또 얼마나 시시한 책인가.

그것보단 성경이 낫겠지 싶어 홍콩에서 나온 중국어 성경책을 넣어달라고 했다.

공관복음을 꼼꼼히 읽으면서 자연스레 내 상황을 투영하게 되었다.

그 즈음 나는 좌익수 중에 6.25전쟁 와중에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게 된 영감님들에게 반발을 많이 느끼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간수를 볼 때마다 적들, 적들이라고 하는데

적어도 나는 말단 간수는 적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성서를 보면서 그런 고민들을 자꾸만 하게 되었다.

예수가 왜 세리를 사랑하라고 했는가.

세리는 민중의 피를 빠는 나쁜 놈인데.

그런 게 말단 간수를 보는 눈과 연결돼서 자꾸만 나를 자극했다.

그러면서 사회의 복잡함이라든가 인간의 복잡함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고 맑스주의로 해결하기 어려운

인간의 도덕성이나 사랑 같은 부분을 예수에게 기대게 되었다.

맑스주의는 유물론이지만 기독교도 유물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도 됐다.

유물론의 반대가 관념론이지 유신론은 아니지 않은가.




김규항 :

진정한 인간 해방은 정치적 해방만은 아닐 것이다.

나머지를 종교 차원에서 보완할 수 있다고 할 때

사상과 종교가 어떻게 결합될 수 있다 생각하나.



서준식 :

부족한 지점이 어디까지가 자본주의라는 제도 때문인지

어디부터가 인간의 근원적인 부분인지 분간하긴 어렵다.

그러나 인간의 윤리적인 부분, 또는 자신이 약할 때라든가 반대로 강해질 때

자신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어떤 잣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부분을 사회주의가 줄 수 있느냐에 나는 회의적이다.

하느님은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상대화의 기준이겠지만

손쉽게 잡을 수 있는 만큼 경계도 필요하지 않을까.

아마 한 인간이 윤리적인 힘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걸 요구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하느님과 사회주의가 같이 갈 수 있다고 본다.

아마 은총 같은 지점에서 갈라지겠지만 그 차이가 현실 생활에서 문제를 줄 정도는 아니다.


김규항 :

은총을 체험한 적 있는가.


서준식 :

51일 동안 단식하고 며칠 방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다 운동 나갔는데

간수가 의자를 갖다 줬다. 의자에 앉아서 햇빛 쬐는데 아, 이런 게

은총이구나 싶었다.



From 아웃사이더


posted by 다르샨 - The Third Eye

by 회색분자 | 2005/03/23 21:02 | Post it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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