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그 후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이것은 신학전체를 아우르는 핵심적인 문제중에 하나이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 따라 신학의 방향이 달라지며 그것에 대한 실천적 방안 역시 틀려진다. 칼바르트를 중심으로 시작된 신정통주의에서 제기하고 있는 것은 예수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이다. 그들은 인간의 인식적 한계를 지적하고나서 예수의 부활은 그 인식으로 잡히지 않는 차원 아래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한다. 그와 반대로 인간의 인식, 그러니까 이성적 사고(이성적이지 않은 사고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은)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예수 부활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 부활은 당시 예수를 따르던 이들, 예수의 사고를 추종하던 이들의 일종의 고백적 표현이며,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문학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예수 부활자체보다는 ,당시 예수를 따르던 이들 사고, 부활이라는 고백이후에 행해진 그들의 행적에 촛점을 맞춘다.

전통주의의 인간의 인식적 한계의 지적, 그리고 그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예수 부활의 가치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유주의 신학이 말하는, 예수 부활의 해석적 측면 접근 역시 높게 평가할 면이 있다. 하지만 그 둘 모두 예수의 부활이 지금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가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사조 모두를 비판한다. 전통주의는 예수 부활의 사실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그것을 믿는 자들의 무분별한 착취행위를 비판하지 못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신학은(혹은 자유주의를 기반으로하는 역사적-비평방법은) 예수 부활을 받아들이는 당시 사람들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춘채(혹은 어찌해서 부활이 '사실'이 아닌가에만 초점을 맞춘채)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행동에는 새로운 해석의 틀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있다. 육체적인 부활이건간에,그것이 상징적인 은유이건간에 중요한 것은 로마시대때 부터 현재까지 기독교인에게 있어 예수의 부활이 타락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고치려고 하거나, 혹은 그 부정한 논리에 저항하려 할 때 가장 강격한 기반이 되어왔다는 것이다.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어제 학교 근처에서 부활절을 '기념'해 달걀과 사탕을 나누어주는 개신교인들을 보았다. 분명, 달걀이 강력한 희망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도 그러한가. 그대와 나,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예수의 부활은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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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색분자 | 2005/03/29 08:37 | private voice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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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1noman at 2005/04/01 12:00
고개를 끄덕이며 다녀갑니다. 님의 글에 뜨거운 연대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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