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10강

강의: 서정민

기록: 김효성

1. 1920-30년대 사회변동과 기독교

3.1운동이 일어난 이 후, 일제는 통치방법을 바꾸게 된다. 헌병통치에서 문화통치로의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통치로의 전환으로 인해, 한글로 쓰여진 문서활동이 가능해졌고, 종교활동에서도 비교적 활동의 자유가 주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교회는 계몽 운동의 입장에 서게 된다. 그 이전까지 한국교회가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직접적 민족운동을 추진해 왔다면 계몽 운동의 추진은 입장의 전환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실력배양을 통한 점진적이고 계몽적인 방법으로의 민족운동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농촌 계몽 운동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금주 금연운동, 아편 퇴치 운동, 공창 폐지 운동 등의 절제 운동도 마찬가지다. 이와 더불어 한국교회는 해외 선교에도 착수한다. 산동 지역의 경우에는 한국인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 때는 한국 사회가 변화하는 시기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운동의 진행이 특히 주목을 요하는 부분이다. 1917년에는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났고, 이러한 영향력은 한국에까지 미치게 되면서 고려공산당이 설립(이동휘, 김규식, 여운형 등)되고 사회주의 운동이 펼쳐지게 되었다. 사회주의 운동과 기독교 운동 사이에는 상호간에 유사성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차이는 신앙의 여부였다. 1920년대 들어 한국기독교는 묵시적 신앙의 특성을 보이게 된다. 역사를 직시하기 보다 하늘을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당시 민족 운동가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사회주의자들은 땅 위의 모순과 왜곡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급진적인)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의 매력에 빠지게 되면서,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세력은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였는데, 기독교가 지닌 내세 지향적 신앙이 그 중심적 비판의 대상이었다. 또한 이에 덧붙여 기독교의 계급 지향성, 곧 중산층, 지배 계층으로의 진입 욕구 역시 마찬가지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사회주의는 기독교를 미국 제국주의의 연결고리로 인식했다. 따라서 이들은 반기독교 운동의 사회적 분위기를 주도했다. 기독교의 비현실성은 집중적 질타의 대상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의 논리는 1930년대 들어서 상당한 설득력을 지녔다. 사회주의자들은 기독교 농촌운동, 계몽운동 등 사회참여운동 마저도 비판했다.

실제로 한국 기독교 농촌 운동은 실패했다. 이들의 농촌 운동이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 문제의 홀대, 그들의 메시지와 방법론은 결국 총독부의 산미증산 계획과 맞닿아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농촌 운동가들은 일제와 연결된 자들로 비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자들이 기독교 농촌 운동가들을 대체하게 되었다. 사회쟁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일제의 시각에 사회주의자들은 ‘적 중의 적’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족운동과의 연관성이 적은 것이 사실인데 한국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운동에 참여했다. 그 이유는 항일운동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의 변종이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은 사회주의가 아닌데, 이것이 항일운동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2. 신앙부흥운동의 활발한 전개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과는 별도로 신앙부흥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길선주의 부흥운동과 말세신앙(전천년적인 임박한 종말론에 대한 신앙), 김익두의 부흥운동과 치병신유집회, 이용도의 부흥운동과 신비주의 운동(자기 안에 신적인 요소가 있어 하나님과의 연합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그 중요한 사례이다. 이러한 신앙부흥운동은 대중을 흡수했다. 사회주의의 입장에서 이러한 기독교 운동들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었다. 종교가 보이는 마리화나성 성향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부흥운동의 전개는 시대적 정황 속에서 함께 읽어보아야 할 측면도 있다. 좌절과 좌절의 연속,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절망의 상황, 이러한 실존적 상황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가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성향은 현실 감각의 상실이다. 초월적 성향, 내세의 궁극적 차원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이다. 현실적 세상에서 진행되는 일들에 대해 유한한 것으로 치부하며 하찮은 것으로, 무의미한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 이러한 상황이었다. 민족의 고난, 보이지 않는 수난의 상황은 내세적 신앙, 부흥운동으로 치우치도록 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극소수의 다른 부류도 있다. 자신의 신앙적 가치를 걸고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항거하겠다는 더 급진적 자세, 죽음도 불사하는 극단적 신앙을 보이는 것이다. 또 다른 부류는 변증에 능한 타협론적 자세를 견지하는 부류이다. 계몽주의자들이 대개 이러한 양상을 보였다. 여기서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한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경우는 신앙보다는 신념, 이데올로기가 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우가 많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현실적 힘의 논리 안에서 자신들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던 기독교 문화 계몽운동이 전개되었는데 그것은 변증에 능한 타협론적 자세를 보이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3.1운동까지만 해도 한국교회는 민족교회로서 나라를 구하는 교회로 통일된 이미지를 보였지만, 1920-30년대로 접어들면서 교회의 에너지는 여러 루트로 분산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주류로 보였던 것은 신앙부흥운동의 전개였다. 따라서 사회적 변혁 에너지로서의 기독교 이미지는 거의 상실될 수밖에 없었다. 일제는 당연히 이를 선호했다. 현실정치에의 변혁, 개혁, 예언자적 역할에 대해서 무관심한 태도는 정치를 편하게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말세신앙 유형이 일제 말기에 접어들면서 탄압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30년대 후반부터 40년대의 일제 지배가 종교적 논리로 변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즉, 1920-30년대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였다. 정교관계에서 내세 지향적 태도는 우호적이고 상호간의 갈등이 배태되지 않는 관계이다. 여기서 1930년대 후반부터는 종교와 종교의 관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볼 수있다. 종교와 종교의 관계에서 종교의 내세적 성향, 특히 말세신앙은 갈등의 소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현재 북한의 경우가 이렇게 볼 수 있다. 북한사회에서 정치적 지배는 일종의 종교적 지배와 견주어 볼 수 있다. 일제하에서는 천황제 이데올로기 하에서 종교적 지배에로까지 이어지게 되는데, 일제말기의 국가목표, 이상은 일본 천황에 의한 일본적 사고, 가치, 질서가 이 세상에서의 이상향이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 지상 목표였다. 그런데 말세신앙은 이러한 지상목표가 곧 끝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말세심판의 대상에 일제의 이상향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일제가 탄압하지 않을 수 없는 세력이었다.

3. 소종파 운동의 대두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주류 교회가 안정을 취해 나갈 때,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 나갈 때, 내세신앙, 타협, 극단적 선택 등을 해 나갈 때, 여기에 회의적인 소그룹이 나오기 시작했다. A, B, 극소수의 C 유형이라는 안정화 상황에 대한 회의적 소그룹이다. 교회사의 흐름을 보면 교회가 안정화 되기 시작하면 거기에 저항하는 섹트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의 한국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안정화된 상황에서 경건운동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이 되었으나 역시 바리새화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저항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교파가 발생하는 것, 그것도 환원운동의 일환이다. 만약 환원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섹트가 아니라 이단이다. 기독교의 정상적인 개혁, 쇄신 운동은 환원운동이었다. 역사의 흐름에서, 여전히 우리는 예수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환원운동을 벗어난 것은 예수의 시대를 벗어난 시대, 해당 종교의 교주적 시대를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원운동의 일환으로 ‘조선적 기독교운동’의 전통이 일어났다. 최중진, 김장호, 이만집 등이 주도한 조선적 기독교는 선교사들이 만들어 놓은 신학, 선교사들의 제도와 조직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이러한 주장을 할 때, 선교부와 일제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오히려 이들은 일제의 협력, 포섭에 가까워졌다. 최중진, 김장호, 이장집 등은 일제의 이러한 포섭에 넘어갔다. 최태용의 복음교회는 비교적 균형을 유지했던 소종파 운동이었다. 김교신과 성서조선 그룹은 한국 민족교회론의 컨텍스트 안에서 가장 완벽한 신학적 모델이 되었다. 백남주의 원산 신비주의 그룹도 또 하나의 유형이다. 그러나 이들의 성향은 반기독교적이라고 볼 수 있다. 신비주의 자체가 내포한 반기독교적 성향이 전형적으로 드러났다. 기독교가 가진 타력구원, 전적 은혜로 인한 구원이 인간의 노력, 인효론에 의해 가리워지는 것이다. 신비주의자들은 모든 종교에 기생해서 타력구원의 원리를 변형시킨다. 사회적 특징으로는 역사와의 단절성을 보인다. 백남주의 원산 신비주의 그룹이 역사와의 단절성을 보인다. 이러한 당시의 소종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한국교회는 나름의 진로를 모색하고 안정화되었으며 이에 저항한 섹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섹트 안에는 이단적 그룹도 생겨나는 데, 바로 이 시대에 이단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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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iards | 2009/06/22 17:25 | Lecture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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