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12강

강의: 서정민

기록: 김효성


8.15에 대한 명칭 사용의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광복' 또는 '해방' 등에서 이미 여러 역사적 입장, 이데올로기의 입장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가 들어가있지 않은 8.15가 그나마 낫지 않을까? 비교적 역사를 비판적 성찰로 보는 입장에서는 8.15를 분단이라고도 본다. 나라의 주권을 되찾은 기쁨보다는 훨씬 아픈 역사라는 것이다. 따라서 8.15는 대단이 기쁘고 긍정적인 순간인 동시에 한국민족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역사가 시작된 순간이기도 하다. 8.15에는 이런 모든 의미가 들어가 있다. 8.15에 대한 복합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이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이다. 이 강의에서는 한국전쟁을 6.25 전쟁이라고 명칭하고자 한다. 6.25전쟁을6.25'사변'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렇게 약한 전쟁이 아니었다. 전쟁의 참혹도를 어떻게 측정하겠느냐만 얼마나 많은 인명이 피해를 입었는가, 전쟁에 얼마만큼의 재화가 들어갔는가 등의 개량적 수치도 살펴볼 때, 세계 전쟁사에서 상위에 랭크될 정도의 기록적 전쟁이다. 전쟁의 충격도- 시간, 면적 대비 사망자수 등을 가지고 전쟁의 밀도를 고려해보는 것- 에서, 6.25는 3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한반도라는 일정지역에서 일어났던 전쟁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한 전쟁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6.25가 같은 민족 간에 일어난 동족상잔의 전쟁이었다는 것이다. 형제간의 죽이고 죽이는 사건으로서의 충격도를 고려한다면 6.25전쟁의 충격도, 참혹함은 여타 전쟁과는 그 수준을 달리한다. 그 때문인지, 사회심리학 연구에에서 한국사람은 향후 100여년간 집단 정신적 변화, 정신적 이상증세를 겪을 수박에 없다는 결론을 낸 적도 있다. 그만큼 6.25가 한국인들에게 남긴 상흔은 심각했다. 이러한 8.15와 6.25전쟁과 기독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1. 8.15의 역사적 의의

8.15가 광복, 해방, 분단의 기점이라는 복합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전술했다. 성서적, 신학적인 입장에서 8.15를 ‘출애굽’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에 동의한다. 성서적 비유로 생각해 본다면 8.15 이후의 역사적 과정, 곧 분단과 6.25전쟁은 ‘광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독교는 신앙적 해방을 누렸지만 동시에 심각한 갈등과 분열을 겪게 된다. 교회가 순수성과 결속성이 유지되는 순간은 고난 가운데 있었을 때였다. 반대로 자유와 영광이 주어지는 순간 분열과 갈등이 일어났다. 이러한 큰 흐름에서의 역사적 맥락을 이 시기에서 볼 수 있다. 8.15 이후 출옥성도들이 나오게 되는데, 이들은 한국교회 재건을 위해 기도회를 가지면서, 한국교회 재건 원칙을 정했다. 그 내용은 신사참배를 하고 일본의 교회 박해에 순응한 대부분의 기존 목회자는 회개하고 물러나라는 것, 최소한 3개월 이상의 자숙기간을 가지라는 것, 또한 자신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해서 새로운 목회자를 양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의 정절을 지킨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는 그들의 신앙적 용기와 투쟁, 순교정신을 대단히 높게 평가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재판가로서의 입장, 의인으로서의 우월의식은 비판적으로 봐야한다. 출옥성도들이 지닌 구별성, 차별성을 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일제 협력자들은 함께 부둥켜안고 가야할 형제가 아니라 비판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그들은  정죄의 형량까지 내걸며 대단히 오만한 자세를 견지했다. 결국 이런 행동은 적지 않은 이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일제에 협력했다는 죄의식을 오히려 약화시켰다. 자기 잘못에 대한 감각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갈등은 비신학적이고 비신앙적인 갈등이 아닐 수 없다. 목숨을 걸고 신앙적 정조를 지켰던 자들을 향해서 일제에 협력한 자들은 변증을 하기 시작했고, 그 속에서 갈등이 일어났다. 회개가 없는 변증이 자리잡았던 것이다. 교회를 지키기 위한 고통의 감내가 그 이유였다. 그 첫 시작이 ‘고신파’ 분열이었다. 신앙적 경건의 이유로 한국교회가 처음 분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한국교회는 2차, 3차 분열이 이어진다. 2차는 신학적 차이로 인한 기장과 예장의 분열이었다.

2. 분단, 6.25 전쟁과 기독교

초기 북한지역에서의 기독교 상황은 남한에 비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 곳에 기독교와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공산주의 국가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북한 기독교의 출애굽이 시작되었다. 영락교회는 그 대표적 교회이다. 수난과 멸절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반면에 남한지역에서의 기독교는 분열과 갈등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분열과 갈등하는 상황 속에서도 성장했다. 한국교회에 있어서 분열은 성장의 한 동력이었다. 놀라운 일이다. 서로 경쟁적인 전도에 힘을 쏟았다. 그래서 분열, 갈등 그리고 성장이라는 독특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고 1948년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이승만 정부는 기독교 국가 수립을 하나의 이상으로 삼았다. 당시 한국의 기독교인은 3.5%에 불과했다. 이런 소수파의 종교를 준국교로 삼았다. 국회의 개원을 기도로 시작했는데, 하나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는 상당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요직의 절반 가까이를 기독교인이 차지했다. 기독교는 출세를 위한 기본 조건 중의 하나였다. 이 때 잘 만들어진게 군목제도, 형목제도와 같은 것이었다. 기독교 전통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적 상황, 그러나 기독교에 돌아가는 특혜적 상황을 볼 수 있다. 8.15이후 한국기독교와 정부와의 관계를 보다 자세하고 엄밀하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6.25전쟁과 기독교 주제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먼저 피해자 그룹에 대한 이해이다. 기독교인은 전쟁에 있어서 대표적인 피해대상자들이었다. 명분은 반혁명세력, 미제스파이, 악덕 브루조아지라는 이름으로 처단되었다. 한국 내 가장 큰 피해자층 중의 하나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동시에 민족공동체를 위해서 가장 봉사했던 그룹도 기독교였다. 전쟁고아, 가족의 이상과 파괴, 전상자 발생 등의 어려움에 대한 극복에 조력자가 되었다. 모든 사회복지 지원 시스템의 대부분이 기독교 계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판지점도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이 시점을 지나면서 이기적인 집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기 때문이다. 집단 이기적 공동체가 된 것이다. 한국기독교전시구국회에서 제주도로의 피난을 위해 LST의 협조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과연 누구를 먼저 태워야 할 것인가? 신학적으로 판단해 보자. 예수믿는 사람은 죽어도 천국을 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믿지 않는 사람을 먼저 태워서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이런 희생이 있다면, 이것이 곧 전도였다. 그러나 목사가 발행한 증명서를 가진 기독교인이 이 배를 탔다. 거짓 증명서가 얼마나 많이 있었겠는가? 그 증명서를 위해 금전적 거래가 있지 않았겠는가? 이것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인들 가운데 “우리끼리”라는 의식이 생겨났다. 예수믿는 사람이 먼저, 피난을 가고, 구호품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공동체의 본질이 무엇인가? 역설적 공동체 아닌가? 스스로에 대한 해체가 아닌가? 예수 공동체가 뭉치게 되면 그것은 반기독교적이다. 교회는 매주 해체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시 모여야 한다. 사회적 단체는 결속될수록 성과가 크다. 그러나 교회는 결속될수록 반기독교적, 반선교적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3.1운동 당시의 기독교인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의 기독교인은 수난과 고난을 감내했다.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신앙양태가 변하게 되었다. 축복신앙, 기복신앙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 믿으면 병이 낫고, 복을 받고, 잘 살게 된 것이다. 십자가가 사라졌다. 예수 믿고 손해보는 것이 사라졌다. 희생적 신앙의 원형을 갖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닌가? 현세 축복의 종교성이 기독교의 전부인양 되면서 이에 충족되지 못한 경우가 생겨났고 자연스럽게 옆길로 새기 시작했다. 역사의식, 책임의식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수많은 메시아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영적, 심적 유약성이 심화된 기독교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단면이다. 정상적인 교회론과 이단 사이비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교회에서 수많은 현세 축복 중심의 신흥종교 공동체가 양산된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양적으로 팽창되었다. 신학이 박약하고 예언자적 예언이 약한 상황에서, 푯대를 잃고 철저하게 세속적 자본주의의 침입에 노출되었다. 목회의 성공이 월급으로, 교세로, 교회당 크기로 결정되는 하드웨어 중심의 평가가 자리잡게 되었다. 역사가의 눈으로 이런 현실을 정확하게 보고 인식해야만 한다.

3. 교파의 분열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실존적 주변의 상황을 가장 중요한 역사적 시기로 인식한다. 역사 속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위기의 시대, 혹은 결정적 시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역사적이라는 것이 여기서 드러난다. 항상 역사는 시대적 가치관이 교차된다. 늘 역사는 충격적 당혹감의 연속이었다. 8.15이후의 역사는 참 어렵다. 가까운 역사, 연결된 역사일수록 역사화시키기가 참 어렵다. 역사가 가까워질수록 주관화의 가능성은 더 크다. 지금 우리의 삶은 이 시기와의 밀접한 직접적 연관성 속에 있다. 통합교단, 기장교단에 속해 있다면 그것은 곧 이 시기의 역사적 맥락에 의해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쉽게 역사를 단정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역사라고 보아야 한다. 8.15 이후의 역사는 많은 해석과 판단이 유보된 상태로 이해되길 바란다. 이데올로기적으로 함몰된 역사 이해는 지양해야 한다.

분열한 역사. 개신교 교단이 300여개가 넘는 현재, 이것이 좋게 보일리는 없다. 분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상처와 갈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분열이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선교적 공동체라면 성장이라는 것은 대단히 좋은 가치이기도 하다. 3% 내외의 종교와 25% 내외의 종교는 그 격차를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기독교가 다수 종교가 되기 시작했던 시대이면서 분열의 시대, 8.15 이후의 역사를 보여주는 단편적 현상이다. 신앙적 해방과 동시에 현상적으로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중세교회 이후 세계 교회도 분열과 갈등이 일어났다. 좋게 말하면 종교개혁이지만 결국 교회의 분열과 양분 아니겠는가? 종교개혁은 대단히 훌륭한 가치이다. 사핵화된 전승, 권위, 제도로부터 다시 신앙의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환원운동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분열의 다른 이름이다. 또한 이 공동체가 시간이 지나게 되면서 마찬가지의 형식논리에 빠진 사핵화의 경험을 하게 된다. 경건운동이 일어난 이유이다. 그러면서 섹트가 교회가 되고, 교회가 다시 분열하고, 이러한 역사가 이어져 내려왔다. 바람직한 역사적 맥락에서 지속적인 문제가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통해 6.25를 바라보자. 민족사의 관점에서 볼 때 6.25는 가장 아픈 역사이다. 또 다시 이런 비극이 오면 안된다. 전쟁의 방법은 피해야 한다.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모든 것이 단절되었다. 결국 남북교회간의 단절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남한에서 계속해서 분열이 이루어졌다. 고신파가 분열했다. 이는 경건 시비로 일어났다. 누가 더 깨끗하냐의 문제였다. 일제하에서 누가 더 순수한 신앙을 지켰느냐의 문제였다. 그러나 사실 경건 시비는 가장 저급한 논쟁이다. 경건의 정도를 말하는 것의 허상, 양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의도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기장파 분열이다. 이는 신학적 분열이다. 감리교의 분열에서는 감리교의 계파적 정치 양상이 드러났다. 통합과 합동도 분열되었다.

4. 이데올로기 기독교로의 전환

민족 대신에 이데올로기가 전면으로 부상했다. 해방이전에는 한국교회가 민족문제에 적극적인가 아닌가, 신앙적 민족운동인가 아니면 계몽적 민족운동인가의 문제가 화두였지만, 한국사회가 변하듯 교회도 변했다. 신학적 진보가 아니가 이데올로기적 진보로, 곧 좌우대결의 장으로 진입한 것이다. 이로써 반공교회의 정체성이 구축되었고 용공시비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큐메니칼 운동이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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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iards | 2009/06/25 21:03 | Lecture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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