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13강

강의: 서정민

기록: 김효성

1. 4.19 혁명과 한국 기독교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변혁과 기독교가 얼마나 관계가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서부터 역사적 관점을 엿볼 수 있다. 교회사가 과연 일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사에서 왜 정치적 변혁을 다루어야 하는가의 의문을 제시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하나의 교회사 이해의 폭넓은 시각으로 보면 좋을 것이다. 한국 현대사를 통해서 우리는 친기독교 정권이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반기독교적 정서를 배양하는 배경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가 우대받는 역사적 상황은 기독교의 반선교적 양상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제1공화국, 이승만 정권은 한국 역사상 기독교가 가장 우대받는 시기였다. 준국교의 상황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한국기독교가 처음으로 주류로 부상한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철저한 기독교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승만이 8.15 이후 국내로 돌아왔을 때, 정치적 기반이 약했다. 당시 국내 세력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은 여운형이었다.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 세력이었다. 그러나 건준의 경우는 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있었다. 좌우합작을 이데올로기로 내세웠지만 보기에 따라 좌쪽으로 기울어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임정요인들이 들어왔다. 주석은 김 구였다. 이들은 가장 합법적이고 역사적으로 정통성 있는 세력이었다. 친일파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정부는 있지만 국민도, 영토도 없는 실제성에 있어 제한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외에 남한에서 강하게 활동하고 있었던 세력 중의 하나는 남로당이었다. 이러한 큰 흐름이 있었다.

이승만은 이 때 미군정의 힘을 배경으로 삼았다. 미군정의 입장에서는 임정은 모든 것이 독립적이었다. 그리고 국내 세력은 좌쪽으로, 사회주의와의 연관성을 띄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역사적 상황은 세계2차대전 이 후 반공시대로 접어들었던 시대였다. 일본이 패전국임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반공이데올로기, 친미의 입장에서 철저히 순응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결국 이승만이 선택한 것은 반공이데올로기였다. 이로써 미국의 힘을 업을 수 있었다. 또한 당시 남한에서 수많은 관공서의 관리들 대부분, 행정적 경험이 풍부한 인적 자원들의 대부분은 일본과 적극 협력한 사람들이었다고도 불 수 있다. 이들이 중심적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교회도 마찬가지였다. 신사참배를 열심히 하고, 일제에 협력한 세력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의 관점에서는 친일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 현실적 세력만 잡으면 정권 수립에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아이러니였다. 이승만은 어찌되었든 미국에서 항일민족운동을 펼쳤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현실과 명분, 정권에 대한 욕망에서 이승만은 무엇을 선택했는가? 이승만은 정치적 야욕이 누구보다 강했던 인물이었다. 결국 이승만은 반공이데올로기 하에 친일 세력을 흡수하여 정치적 기반을 삼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역사 청산이 없었다. 초대 합법적 정부의 성격이 일제의 모든 정치, 경제, 사회적 세력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었다. 반민족특별위원회가 있었긴 했다. 그러나 이는 일종의 명분축적을 위한 정치적 제스쳐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이승만 정권에서 대단이 중요한 종교적 역할을 했던 것이 기독교였다.

이승만 정권은 기독교에 대한 우대정책과 발탁정책을 사용했다. 3~4%의 기독교인들이 리더그룹의 30~40%를 차지하며 주도권을 잡았던 것이다. 기독교 내측에서 본다면 나쁜 일이 아니다. 특수선교 영역도 확대되었다. 군목제도가 생겼다. 군신부, 군종스님은 인정되지 않았다. 교소도의 복역자들을 위한 형목제도도 생겼다. 기독교가 좋아할 만한 정책이었다. 그러나 교회의 예언기능은 상실되었다. 사회의 주도권 세력이 될 때 수반될 수밖에 없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예언 기능은 기독교의 기본적인 기능 중의 하나이다. 성서에 입각한 정의, 옮음을 말하는 것은 중요한 사명이다. 신학이 지지부진해 지는 이유는 예언성의 상실에 있다. 제1공화국 시절에 예언 기능의 상실 진로를 밟았다. 부패, 독재정권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를 했던 기독교, 그 명분은 지도자를 세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나 결국 4.19 혁명에서 이러한 기독교의 지지가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 때 연세대학교 기독학생들의 모임에서 교회를 향한 거침없는 쓴소리를 냈다. 해방이후 최초의 교회에서의 예언기능이라고도 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사회적 신뢰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민족을 위해 희생과 헌신, 고난을 감내했던 이타적 공동체로서의 기독교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제1공화국을 거치며 급속한 고도성장을 지난 이후 결국 이기적 공동체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가 유리해지고 상황이 좋아지면 오히려 이상하게 나빠지는 역사적 맥락을 발견한다. 세속적 기준에서 행복한 기독교인 보다 고통중의 기독교인이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통을 잘 향유할 수 있는 신앙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 할게요 잘 봐주세요, 더 나아가서 잘 봐주시면 잘 할게요." 이것이 기독교신앙인가? 아니면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것이 기독교신앙인가? 교회사에서 발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4.19혁명은 기독교의 예언성을 자극했다.

2. 5.16 군사 쿠테타 이 후 군부정권과 기독교

그리고 5.16 쿠데타 이 후 다시 기독교의 예언기능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국은 5.16 쿠테타 이 후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개발독재가 자리 잡았다. 개발독재의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 개발의 일정부분 기여를 인정하면서, 개발이라는 명분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다 용서되는 상황을 낳아버렸던 것이다. 경제적 가치의 향상이 모든 것을 결정지어 버리는 가치관이 용납되었다. 이를 위해 너무나 반역사적인 졸속 한일수교를 맺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교의 일부가 예언기능을 회복했다.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해서 기독교가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후부터 기독교가 양분되었다. 정권에 대한 지지세력과 비판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진보적 기독교 세력은 민주화 및 통일운동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보수적 기독교는 ‘정교유착’의 양상을 보였다. 물론 극단적 사회참여는 이데올로기로 전락의 위험성이 있다.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가 공의에 묻히게 되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극단적 신앙논리도 물역사의 위험을 내포한다. 공의가 사라지는 것이다. 양 극단의 가치를 함께 수반해야 하는 것이 기독교다. 사랑과 정의가 함께 있어야 하는 것, 여기에 기독교의 매력이 있지 않겠나. 기독교 세력의 양극화는 이런 면에서 문제가 있을 것이다.

3. 경제 고도 성장과 기독교의 양적 성장

경제적 윤택함을 배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서 깊이 있는 신학적 성찰을 피해서는 안 된다. 경제성장만이 미덕일 수는 없는 법이다. 성장에서는 분배를 생각하기 힘들다. 격차의 문제는 필연적이다. 계층간 소외 현상의 심화는 피할 수 없다. 또한 환경가치의 파괴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는 창조질서의 파괴를 의미한다. 이러한 경제 성장의 과정에서 기독교인구의 급성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과연 모든 기독교인구가 예수복음에 입각한 사람들이겠는가? 목회자는 어떠한가? 교회의 급성장도 마찬가지로 경제 성장의 가치관에 함몰되지 않았나? 신앙의 고백이 자본의 논리와 교묘한 타협을 이루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결국 성장의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왔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도 교회로 들어왔다. 교회 안에 계층 간 격차 양상, 교회 간 격차 양상이 등장했다. 교회에서 특정한 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의 영향력은 사회적 리더십, 정권의 우대 속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군사정권 이후 개발독재 시대는 기독교인의 수적 우위로 이루어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한 신흥이단종파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성장론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성장동력을 진실한 신앙,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 수난을 감내할 수 있는 이타적 공동체, 공의를 위한 예언적 공동체로의 전환으로 이끌어 내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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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iards | 2009/06/25 21:15 | Lecture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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