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13일
[칼 라너 세미나]제2강
2009.9.8
강의: 정재현
기록: 민경찬
대학원 강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제 중심의 강의고, 또 다른 하나는 인물 중심의 세미나이다. 인물 중심의 세미나-아우구스티누스/아퀴나스, 루터/깔뱅, 하르낙/트륄치, 틸리히/라너)에서는 해당 인물 사상의 뼈대-특별히 방법론과 인간학-를 살피고, 주제 중심의 강의-철학적 신학, 신학 방법론, 종교신학 등-에서는 신학의 전체적인 큰 틀을 살핀다. 주제 중심의 강의에서는 내가 여러분에게 큰 틀을 제공하는 데, 그리하여 체계적인 정리, 체계적인 구성법을 익히는데 무게가 있다면, 인물 중심의 세미나에서는 자연스럽게 원전 읽기, 2차 해설서가 아닌 원사상가의 원작품을 읽는 것이 중시된다(물론 원전 읽기는 언제나 중요하지만 이 세미나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특정한 아웃라인을 예고하지 않은 채 텍스트를 세심하게 읽음으로써 읽는 기술을 익히는 것은 해당 인물의 사상 파악 못지 않은 이 세미나의 주요 목표다. 틸리히도 그렇고 라너 처럼 읽기가 만만치 않은 이의 텍스트는 진하게 읽어야 한다. 함께 등불 밝히고 동굴 속을 탐험하는 심정으로 텍스트를 더듬고 살피고 끌어내 이런저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장과 장, 문단과 문단 사이를 꼼꼼히 읽는 Intensive reading,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이 석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텍스트에 대한 intensive reading이 이루어져야 할 터인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들도 다 아는 글밖에 써지지 않게 된다. 이 세미나에서 내가 주제 중심의 강의에서 하듯 그림을 그리면 여러분의 intensive reading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이 세미나에서는 가능한한 내 그림을 제공하기보다는 함께 읽고, 몇 가지 제안을 섞으며 수업을 진행하겠다. 물론 섞다보면 말이 길어질 수도 있지만 일단 취지는 그렇다.
첫 번째 발표.
Barrie A. Wilson, <The Possibility of Theology After Kant: An Examination of Karl Rahner's Geist in Welt>
두 번째 발표
Anne Carr, <Theology and Experience in the Thought of Karl Rahner>
읽는 첫 시간이니 시작하는 마당에 '이런 식으로 읽어보면 어떻겠는가'라는 제안의 차원에서 몇 부분을 살피겠다. 첫 번째 아티클을 보자. 제목이 '칸트 이후 신학의 가능성'이다. 칸트가 어쨌길래? 지난 시간에 잠시 이야기했지만 칸트와 함께, 칸트 이후로 형이상학의 가능성 자체, 아울러 신학의 가능성 자체에 큰 물음표를 던져졌고 그 마당에 신학의 가능성을 논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이른바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라 불려지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전환하는 것에 비견될 정도의 파급력을 지닌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칸트의 선험적 구성설이 형이상학, 형이상학과 같은 장르라 할 수 있는 신학에 가한 일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인간의 앎이란 '있음 그 자체'에 대한 것일 수 없다, '있음 그 자체' 그대로는 인간에게 알려질 수 없다, 소위 '물자체불가지론'이다. 있음 그대로 알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있음과 앎 사이는 철저하게 경계지워질 수 밖에 없고, '있음 그대로의 있음'은 ,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알려질 수 없으며, 인간은 다만 앎의 통로, 앎의 장치, 앎이라고 하는 나름대로 그릇에 담기는 범위까지만 알 수 있을 뿐, 그 밖으로 새어나가는 정보들은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칸트에 익숙하다면 이러한 설명이 이해가 되겠지만,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를 이들을 위해 한 가지 예를 들겠다. 지금 3m 떨어져서 이대현이라는 친구가 나 정재현을 보고 있다. 정재현을 보면서 이대현은 정재현이 아닌 것을 보고, 그것과 구분해 정재현이라는 '앎'을 얻어낸다. 그런데 그것이 정재현 자체인가? 엄밀하게 말하면 이대현이 보는 정재현은 정재현 그 자체가 아니라 이대현 안에 들어온, 이대현의 망막에 맺힌 정재현의 상이다. 그 상으로부터 0.1mm로 가지 않는다. 만약에 0.1mm라도 밖으로 나가면 초점이 안 잡혀서 정재현인지, 김재현인지를 알 수 없고, 좀 더 나아가면 원숭이인지, 사람인지, 더 나아가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상이 쫙 잡혀서 망막에 맺혀지니까 정재현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앎의 대상은 앎의 주체로부터 0.1mm도 벗어나지 않는다. 시각 행위가 그렇다. 정재현 자체에서 정보가 쫙 나아가 3m 떨어진 저 앎의 주체에게 날라갔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나? 빛이 1초에 30만 km를 가니, 3억분의 3초, 억분의 1초가 걸린 셈이다. 인간은 1/16초, 1/24초보다 더 짧은 것은 끊어진 것들이어도 이어서 볼 수 있도록 구성되었기에(이 덕분에 우리는 영화를 볼 수 있다) 억분의 1초에 감이 안 잡혀서 그것을 '동시'라고 판단하지만, 실제로는 없는 허상(억분의 1초전의 정재현)을 붙잡고, 정재현 자체와는 상관없이 이대현은 그것을 종합해서 '인간이다, 인간 중에서도 정재현이다'라는 앎을 끌어낸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있음에 관한 이야기, 있다가 없어지고 다시 있기도 하는 가련한 것들부터 있음 중 있음인 신까지를 다루는 종래의 형이상학은 칸트에 의해 붕괴되었다. 앎이 한계지워질 수 밖에 없고, 우리의 앎에 틀 안에 담긴 것 밖에 알 수 없고,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 밟혀졌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했지만 다시 칸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경험은 감성이라는 장치를 가지고 있는데, 감성은 구체적으로 시간과 공간이라는 도구들을 가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한계지워진 도구들로 이루어진 감성이라는 장치를 통해 인간은 경험을 한다. 그 경험을 해 추려낸 것은 지각이라 불린다. 지각된 재료들을 가지고 인간의 기본적인 이해의 틀거리-범주, 양,질,관계,양상이라는 네 개의 범주, 그 범주가 다시 세 개의 하위 범주로 나뉘어 총 12개의 범주-를 통해 살펴서 '저것은 뭐다'라는 개념이 나온다. 이렇게 해서 감성에 의한 지각과 오성에 의한 개념, 시공간의 범위 내에서 감성에 의한 지각을 주물러서 범주 안에 집어넣어 다시 뽑아낸 오성의 행위를 통해 추려진 것이 개념이다. 지각이든 개념이든 전부 한계 안에 잡혀 있다. 어떤 한계? 시간,공간이라는 한계, 범주라는 한계, 다 한계다. 앎의 한계를 이제는 인간은 거부할 수 없다. '앎'이라는 그릇 밖에 떨어진 것은 알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종래의 형이상학의 붕괴가 일어난 것이다. 우주론,존재론,신론 등등을 말하던 종래의 형이상학(眞의 형이상학)은 이제 불가능하다. 왜? 인간은 그 너머를 알 수 없는데, 고대,중세인들은 그것을 이야기했지만 걔네들은 앎의 한계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채 떠들어댄 것이다. 이렇게 그는 말했다. 물론 칸트가 어느날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그 이전에 경험론자들, 특히 흄이 감각적 회의론을 통해 흔들어댐으로써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이렇게 칸트에서 인식론의 종합이 일어나니, 더 이상 앎의 한계가 없었던 것처럼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난 시간은 여기까지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칸트가 제시한 대안적인 형이상학은 善의 형이상학이다. <실천이성비판>에서 그는 선문제를 다룬다. 선문제 만큼은 우리가 경험에서 벗어나서 말할 수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왜? 선은, 도덕적 선은 '당위'기 때문이다. 당위는 경험하지 못해도 여전히 말할 수 있는 의미와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그 당위의 근거는 무엇이냐? 자유다. 강제로 선한 행동을 한 것을 우리는 선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 선한 행동은 자유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그 자유가 자유로서 선, 악을 했으면 선에 대해서는 보상이, 악에 대해서는 처벌이 가해져야 하는데 이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그 당위성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칸트가 바보가 아니니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였다. 대신 죽음 이후에라도 반드시 보상이 된다는 견해를 밝힌다. 죽음 이후에 보상이 되려면? 육체는 죽더라도 영혼은 불멸해야 한다. 따라서 영혼은 불멸해야 한다. 선악 판단이 가능하기 위해서 자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래서 영혼불멸을 말한다. 그런데 이 자유와 영혼불멸이 그냥 되냐? 이것을 관장하는 신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래서 칸트에게 있어서 신은 요청이 되는 신이다. 즉, 존재 대상으로서의 신이 아니라 도덕적 당위의 근거로서 '요청'되는 신인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요청되는 신을 그는 그렸다. 그랬을지언정 신 존재 자체의 있음/없음을 따지는 진의 형이상학은 불가능하다. 그는 선의 형이상학이 가능할 뿐이라고 말했다. 칸트에 의해서 진의 형이상학이 불가능하다고 선언을 받으니, 신학은 어떻게 되겠는가? 저 형이상학이 붕괴했으니 이제 신학의 가능성도 폐기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칸트의 성찰에 힘입어(사실은 종교개혁 이후부터 그러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신(神)학에서 신(信)학으로의 전환이 일어났다, 종교개혁 이후부터 그러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은, 종교개혁 이후에 전개되는 정통주의, 경건주의, 자유주의는 모두 신관이 아니라 신앙관이었다는 점을 통해 알 수 있다. 정통주의? 믿음의 정통성을 말하는 것이고, 경건주의는 믿음의 경건성을 자유주의는 믿음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신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고전적인 패러다임에서나 가능하지 칸트의 전환과 함께 앎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는 신앙을 다룰 수 밖에 없다. 칸트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슐라이에르마허가 theologia는 Glaubenslehre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그러한 제안을 했던 그가 현대신학의 아버지, 시조로 평가받는데는 이러한 맥락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자세히 지금 들어갈 수는 없고, 그러면 神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 가능성은 실종되고 마는 것이냐를 두고 다시 형이상학을 복고시키고자 하는 몇몇 흐름이 등장한다. 그 중 하나는 화이트헤드로 대변되는 과정사상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 중 <과정과 실재 process and Reality>가 있는데, 여기서 and는 실제로는 as로 쓰여서 process as reality, reality as process로 봐야 온당하다. 이 사상 속에서는 신도 과정 속에서 이해된다. 신도 창조 속에서 같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서 과정신학은 신 이야기의 가능성을 되살리고자 하는데, 그것이 현대적 복고라 하더라도, 종래의 형이상학에 대한 향수를 짙게 깔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외로운 길을 걷고 있다. 또 다른 흐름은 이른바 신토마스주의이다. 자크 마리땡, 에띠엔느 질송등 20세기 초에 활동한 네오토미스트들은 "앎 이후 삶으로 까지 진전된 상황 속에서 있음은 앎에 담기지 못한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되어야할까? 어떤 식으로든지 앎과 삶에 대해 그 있음, 독야청정 있는 있음이 어떤 식으로든지 앎과 삶에 관계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일련의 작업들을 펼친다. 그 네오 토미즘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의 작업을 한 이가 바로 칼라너이다.
아티클에서는 Geist in Welt 를 다루는데, 이 책은 그가 신학박사 학위논문을 내기 전 철학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냈으나, 지도교수가 퇴자를 놓아서 통과되지 못한 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아티클 첫 번째 문단을 보자. 신학의 가능성이 붕괴되는데, 왜 붕괴되는가 하냐면 experience 때문이다. 이 experience는 두 번째 아티클과도 관련이 있다. 다음, 두 번째 문단 중간쯤을 보면 주8번 다음에 ens realissimum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실재적인 존재인데, ssimum은 최상급이니 the most real, 즉 실재 중 실재, 최고의 실재다. 다음 문장을 보자. "This idea of the ens realissimum, although it is indeed a mere representation, is first realised, that is, made into an object, then hypostatised, and finally, by the natural progress of reason towards the completion of unity, is, as we shall presently show, personified." 먼저는 그냥 알게 되었는데, 앎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있음의 단계까지 올라가고, 더 나아가 인격화까지 일어났다. 종래 형이상학적 실재라 불린 것은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것은 신격화 과정의 수순이다. 처음에는 그냥 신성인식인데, 이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신이라는 존재로서 실체화되고, 목석같은 실체가 아니라 인격적인 실체로 전환이 일어난다. 이렇게 해온 것이 한계를 지니게 되었고 이것에 대안이 어떻게 벌어졌는가? 아티클의 저자에 따르면 세 가지 지류로 펼쳐졌다. "there are three ways in which a post-Kantian theologian can consider the possibility of theology"(246) 첫 번째는, 한계를 넙죽 인정하고, 칸트처럼 도덕으로 가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이성의 한계로부터 확대가능성을 감정으로 끌고간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 방식은? 바르트를 대표로 하는, 모든 인간적인 시도들을 거부하고, reason을 접고 계시를 출발점으로 삼고 그 다음에 그것을 철학과 다시 대화시키는 방식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247p 마지막 문단에서 비판이 펼쳐진다. 이것은 바르트의 신학과 대비되는 라너의 신학이 암시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크게 둘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인간이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이다. 인간에게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가? 있다면 어떤 구조를 가졌는가? 아니면 인간의 수용 능력과는 상관없이 계시 자체의 절대적인 권위로 갈 것이냐? 바르트가 이런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데 반해 라너는 이것을 고민한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는 인간학이 방법론이 되고, '경험'이 그의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두 번째 물음은 어떠한 면에서는 첫 번째 질문과 같다고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하기로 한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 가능한가?"이다. 이런 물음을 검토하지 않고서는 계시의 관점 자체가 빈약해질 수 밖에 없다고 비판함으로써 신의 계시와 마주하는 이편의 문제, 인간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펴내 신학의 가능성을 복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라너 신학의 1차적인 관점이라고 아티클에서는 말하고 있다.
라너가 취한 방법은 249p 두 번째 문단에 나온다. "...thought of the Marechalian school of neo-Thomism and the whole attempt to render Kant's transcendental method fruitful for Thomist epistemology was complemented by acquaintance with Heidegger's phenomenological approach. ..." 칸트에 대한 마레샬의 재해석, 하이데거까지 끌고 들어와서 그런 작업을 했다. 시간 관계상 건너 뛰어서 250p를 보자. Geist in Welt 를 두고 구체적으로 그의 작업을 풀어간다. 251p에 가면 아까 읽었던 것을 좀 더 자세하게 풀어주는 이야기를 한다. " He wants to connect the problematic of Thomas's philosophy with the problematic of today's philosophy, ... "today's philosophy" he means the whole phenomenological movement of Heidegger and Husserl back through Hegel and Fichte to Kant ..." 간단히 이야기하면 라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과 라너 사상의 배경이 되는 독일관념론과 현대실존철학을 다 이어서 접목시켜보려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문화사적으로, 라너는 자신의 정신문화적 토양이 되는 독일근현대철학과 카톨릭신학의 대부인 토마스 아퀴나스를 연결시키려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밑을 보자. "... he cautions, he is engaging not in a critique of knowledge, (앎의 문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but in a "metaphysics of cognition"(metaphysics of knowledge로 봐도 된다) In opposition to Kant(칸트 문제를 싸안고 그것과 대립해서) he seeks to develop a noetic hylopmorphism, that is, an adequate understanding of man's knowing abilities in relation to the ontological structures of mans' being and his situation in-the-world."
자, 여기서 주목해볼만한 것은 "metaphysics of cognition"이라는 표현과 noetic hylopmorphism이라는 고밀도의 어휘다. 우선, metaphysics of cognition 을 보자. metaphysics는 있음 이야기고 cognition는 앎 이야기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어떻게 되는가? "앎에 관한 있음"이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이게 칸트에 대한 라너의 답변인데, 이것을 달리 표현한 것이 noetic hylopmorphism이다. hylopmorphism은 형이상학의 언어고 noetic은 인식의 문제다. 노에틱은 현상학에서 사용되는 노에시스, 노에마와 관련되는 표현인데, 노에시스는 주체의 인식행위를 가리키고, 노에마는 인식 대상을 가리킨다. 인식이라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주체로부터 대상을 향해가는 지향적인 인식행위가 노에시스고, 이것의 형용사가 노에틱, 주체에 의해 지향됨으로써 인식되는 대상, 인식되는 대상의 대상성, 혹은 인식 가능성, 인식 현실성은 노에마타라고 한다. subject, object, subjective, objective로 표현되는 종래의 인식론을 극복하고 현상학에서 주객구도의 새로운 조성방식으로 나온 어휘들이 바로 노에시스, 노에마 등등이다. subject, object는 처음부터 분리를 설정했다. 반면 noesis, noema 는 그러한 분리구도로 오해받지 않기 위한 현상학의 대체어다. 내 식으로 이야기하면 '무엇'만 있다가 ‘어떻게’ 물음이 등장하면서, 이 물음 속에서 없던 ‘누가(인식주체)’가 등장했다. 이렇게 보면 '무엇'과 '누가'를 연결하는 것이 '어떻게'다. '누가'는 주체고, '무엇'은 객체다. 이렇게 해서 subject와 object는 철저하게 분리된다. 이 분리를 확실하게 근거지은 양반이 바로 데카르트다. 근세는 이 '분리'부터 시작된다. 형이상학적으로도 분리시키고, 인식론적으로도 분리시켰다. 그래서, Cartesian dualism, 데카르트의 이원법, 이원론이다. subject-object는 처음부터 '분리'로 시작되었다. 왜? 인식주체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다. 근세의 인간중심주의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무엇'만 있다가 '누가'가 등장했는데, ‘무엇’ 위치만큼 ‘누가’도 비중을 차지한다고, '무엇'이라는 객체에 대립하여 주체가 그만큼의 비중을 지닌다, 이것을 데카르트가 실체론을 이야기하면서 시도한 것이다. 철저히 분리! 이런 것에 비해서 노에시스와 노에마는 intentionality에서 서로 만난다. 심지어 더 나아가 노에마는 노에시스에 의해 구성된다는 말도 나온다.
애써 내가 노에틱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야기하는 이유는 metaphysics of cognition의 뜻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은 일찍이 없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고,중세인들은 metaphysics를 이야기했다. 근세인들은 앎을 이야기했다. 현대에 와서는? 현상학도 그렇고, 실존철학도 그렇고, 해석학도 그렇고 전부 삶이 기본지평이다. 삶에서 '있음'이고 '앎'이지, 삶을 떠난 '있음'은, '앎'은 불가능하고, 설령 가능하더라도 무의미하다. 현대 시대정신의 지평인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재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고 '의미'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재여도 의미 없으면 꽝이고, 진리여도 의미 없으면 꽝이다. 의미라는 채널, 기준으로 실재의 가치, 진리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현대의 사조들은 다 그렇다. 의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한 터전에서 metaphysics를 이야기한다?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라너는 노에틱을 사용하는 것이다. 노에틱은 object로 다가갈 뿐 아니라 object를 이리저리 구성(constitution)한다. 여기서 구성은 creation도 아니고, construction도 아니다. 대상이라는 것이 가리키는 그 물자체는 그대로 있다. 그러나 그것의 인지 가능성은 ‘주’에서 구성한다. 그것이 노에시스/ 노에마 사이의 관계의 뜻이고, 이제는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이 상호구성적으로 되는 것이다. 상호구성이 어떤 의미를 지기고 있는가? metaphysics 와 cognition의 상호구성인 것이다. 거칠게 풀이하면 라너는 칸트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너 칸트는 앎의 한계에 우리가 갖혀있고, 있음 자체를 모른다 말하지만, 나 라너는 토마스를 모시고 너의 통찰을 빌려 다시 말하겠다. 한계는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음과 앎 사이의 noetic co-constitution 작용 없이는 한계 내에서의 앎조차 불가능하다"
정리해보자. 칸트에게서 헤겔, 후설, 하이데거, 그리고 라너가 있다. 칸트에게서는 어땠는가? 있음은 모른다. 앎은 단편적이고, 알갱이들이 이리저리 있을 뿐인데 이것은 현상이다. 결국 있음과 앎의 분리다. 헤겔은?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이라는 궁극적인 경지가 있다. 그렇다면 현실은? 현실에서는 당연히 존재와 사유가 분리되어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세계는, 역사는 존재와 사유가 하나가 되는, 있음과 앎이 하나가 되어가는 방향으로 점차로 움직여 간다. 왜? 절대정신의 원래 모습이 그러하니까. 대립을 지양하고, 결국은 역사의 종점에, 종말의 역사에서는 모든 차이가 극복되고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이라는 절대 정신에 다다른다. 여기까지가 근세다. 이 이후 진행되는 것은 모두 헤겔에 대한 반동들이다. 헤겔의 그림은 멋있는 그림이고, 좋은 결론이지만 현상, 실존등으로 표현되는 현실, 즉 삶에서 볼 때는 이상적인 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후설은? 그는 앎에서 출발해서 껍질을 벗기고 벗기면 '있음'에 도달한다고 생각한다. 현상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는 현대적이다. 하지만 '있음'에 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근세에 한 쪽 발을 담그고 있다.
그렇다면 하이데거는? 하이데거에 있어서는 '있음'과 '앎'이 '삶'이라는 거대한 지평에서 어떤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뱅글뱅글 돈다(이것을 해석학적 순환이라 한다). 여기서 있음과 앎은 같은 것도 아니고 선후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논의를 받아 라너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칸트가 제껴버렸고, 헤겔이 (허무맹랑하긴 하나) 다시 살려낸 '있음'을, 현상학에서 앎에 대한 새로운 표현인 noetic을 수용하여, 그것을 하이데거에게서 배운 '삶'이라는 지평 속에서 나름대로, 어떻게든 표현해내는 것. 이것이 바로 라너의 작업이고, 이러한 통찰을 담아낸 표현이 noetic hylomorphism 이다. hylomorphism은 hyle라는 morphe라는 두 그리스어의 결합어이다. hyle는 질료라 하는데, 물질이 좋은 예가 되지만 물질로 바로 환원시키는 번역은 곤란하다. 질료라는 것은 무엇인가가 있는 것의 원재료를 뜻한다. 이것은 물질적이기도 하고 정신적이기도 하다. 원재료는 이렇게도 될 수 있고, 저렇게도 될 수 있는 가능태(dynamis)라고도 말할 수 있다. morphe는 형상이라고 불려지는데, 형상의 1차적인 의미는 모양이지만, 이 맥락에서 좀 더 정확한 표현은 본질이다. 이루어진 본질, 현실화된 본질 이런 뜻이다. 이 둘이 연결되어 hylomorphism 인데,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서 유래한다. metaphysics of cognition이 형식적인 표현이라면 noetic hylomorphism은 내용을 담아낸 표현이다. cognition이 어떤 방식으로? subject, object split duality 방식이 아니라 intentional co-constitution이라는 뜻으로서 noetic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앎이다. 있음 제끼고 한계지워진 앎이 아니라 앎이 있음을 향해 열망하는 것이다. 있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있음의 모습은 바로 hylomorphism 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을 아퀴나스가 그대로 썼고, 라너가 다시 받아 칸트에 의해서 지적된 문제를 넘어서는 시도를 한다. 여기서 hylomorphism(질료형상설)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그림을 그려 보겠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은 이른바 이데아론, 형상설이다. 이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형상설이다. 둘 에게 있어서 형상(실선)은 같다. 그런데 점선의 영역을 두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질료를 플라톤은 현상을 말한다. 한글로는 한끗차지만 플라톤에게 있어서 형상(실선)과 현상(점선)은 엄청난 간극을 갖고 있다. 플라톤이 볼 때 지금 우리는 현상의 세계(점선의 세계), 그림자의 세계, 가짜의 세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본래 있던 곳은 실선쪽이다. 육체를 뒤집어 쓰고 (점선의 세계에)살고 있다가 형상의 세계로, 영혼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그림에서 보면 알 수 있듯 물질에서 정신으로 가면 갈수록 존재의 정도가 높아진다. 가장 정신적인 존재(빨간선)는 가장 존재성의 정도가 높다. 물질성이 전혀 없고 정신적이기만 한 존재는 존재성의 정도에서 비존재적인 성질이 전혀 없다. ‘없음 없이 있기만한 있음,’ ‘있음 자체’, 이것을 신이라고 플라톤은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러한 구도를 그대로 가져온다. 그런데 플라톤에게 있어서 지고의 완전자 ens summe perfectum가 아리스텔레스에게 있어서는 ens perfectissimum 이다. 이 둘은 뉘앙스가 상당히 다르다. summe perfectum 은 각각의 perfection들이 있는데 그 중의 summit를 의미한다. 플라톤에게 있어서 형상과 현상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요단강이 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는 각 현상계의 개별적인 인간 안에 형상이 들어있다. 그 안에서 개별적인 질료(이 질료들은 육체적인 것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까지를 포함한다)들이 달라서 각각의 차이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간 본질, 형상이라고 스승이 불렀던, mophe는 그대로다. 신학사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의 그림을,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을 따른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서 인간은 대책이 없다. 종교개혁자들 역시 (아리스토렐레스의 그림을 따른)아퀴나스에 반대해, 인간은 타락했으니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라너는? 다시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을 따른) 아퀴나스의 그림을 다시 복고시키려한다. 소위 개신교인 우리에게 익숙한, 칼빈에게 있어서 정점에 다른 '전적 타락, 전적 구원-인간이 너무나 타락해서 하나님의 imago, similitudo 다 박살났다는 생각-'의 구도에서는 인간이 신을 어찌 뻗어서 만날 길이 없다. 신이 절대적인 은총, 주권으로 오셔야만 한다. 인간이 발버둥쳐봐야 할 길이 없다. 그에 비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림에 기반한 인간관에서는 인간 안에 신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가 여전히 있다. 라너의 supernatural existential(초자연적 실존범주)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hylomorphism에 연원을 둔다. hyle은 morphe를 향해서 열심히 가고, morphe는 hyle를 취해 morhe를 이루어내는 방향으로 열심히 이끌어 잡아당긴다. 플라톤 동네는 왔다가 뚝 끊어져서 간다. 플라톤 그림은 실선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점선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는 이렇게 비슷하고, 이렇게 다르다. 인간 안에 신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 이것이 초자연적 실존범주다. 하이데거가 실존범주를 세 가지를 말한 것에 라너가 하나를 더 추가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앎의 한계에만 갖힌 채 지성으로, 감정으로, 의지로, 혹은 이것을 제껴버리고 (바르트 식으로)계시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계시를 요청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는 영역이 생긴다. "(프로테스탄트의 그림과는 달리)우리는 비록 이렇게 저렇게 타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similitudo는 박살났어도, imago는 남아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느 한 전통을 가지고 그것을 금과옥조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미 기독교 신학에는 이러한 양대 전통(이것을 또 다른 전통에 비교하자면 하나로 묶일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양대 전통이라고 해두자)이 질퍽하게 들어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그 중 한 흐름일 뿐이다. 라너는 또 다른, 유구한 전통 위에서 칸트 문제를 하이데거의 도움을 받아 현대적인 의미의 형이상학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기왕 그림을 그렸으니 hylomorphism 이야기를 좀 더 하겠다. hylomorphism에서 질료는 형상을 향해 올라간다. 이 움직임에 힘이되는 것이 동력이고, 움직임의 구도에서 형상은 목적도 된다. 여기서 목적,형상,동력은 같다. 그 중 하나를 취해 '질료형상설' 이랬지만, 엄밀히 말하면 질료형상설은 사실은 4원인설이다. 형상이, 본질이 목적이기도 하고, 동력이기도 하다는 것, 목적은 최종 도달점이고, 동력은 시작부터 도달점까지를 책임진다. 목적임과 동시에 그 목적까지를 끌고가는 동력, 이 그림에서 신은 그런 존재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신론'은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끌고와)이것을 말하고 있다. 라너는 이것을 다시 가져와 신이 시작부터 이미 동력인으로서, 질료의 바닥부터, 우리가 일상 속에서 이리저리 알고 저렇게 하는 모든 행위에 이미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앎이라고 하는 것은(그것이 설령 한계지워져 있다 할지라도) 이미 동력인의 작용이고, 역사인 것이다. '이미 작용하고 있다' 하면 어떻게 되는가? 신이 '이미 작용하고 있다'는 말의 이면에는 무슨 뜻이 있는가? "인간이'이미' 신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그 작용의 대상으로 있기에 인간이 앎의 행위를 하면 결국 하나님에 대한 앎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차원에서, welt인식은 '이미' 신 인식이다. Prote Hyle(제일 질료)에서부터 '이미' 동력인이 작용하고 있기에, 인간은 대가리로 인식하지 못해도, 겪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을 겪고 있다. 이것을 라너는 transcendental이라 말한다.
앞으로는 그의 텍스트를 통해 디테일한 부분까지를 보겠지만, 시작하는 마당에 라너가 이러한 통찰을 개진시키고 있다는 것을 간략하게 소개했다. 페이지를 읽다보면 지금 한 이야기들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by | 2009/09/13 16:39 | Lectures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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