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1/2














The Last Temptation Of Christ(1988)

마틴 스콜세지 감독, 윌리엄 대포,하비 키이틀,바바라 허쉬등 출연



1.분명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은 마틴 스콜세지에게 있어 필생의 프로젝트였을 것입니다. 줄곧 '수난과 구원'문제를 다루어온 그에게 있어 그것의 알파요 오메가 였던 예수의 일대기를 담아내는 것 만큼이나 매혹적인 주제는 없을테니까요. 하지만 또 다른 필생의 프로젝트였던 '갱스 오브 뉴욕'이 그랬듯이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도 그의 필모상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는 못합니다.

2.'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에서 시도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것입니다. 공관복음서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는 처절하지요. 마가복음에 나온,'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하고 비명을 지른뒤에 죽는 예수와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뒤에 눈을 감는 예수는 분명 다른 뉘앙스를 가집니다. 스콜세지는 바로 이것을 연결시키고 그 안에서 예수가 그리스도가 되는 과정을 추적하지요. 공관복음서,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공관복음서를 재해석한 카찬차키스의 세계 속에서 예수는 끊임없이 격돌합니다. 그러한면에서 공관복음서에서 광야에서 끝나는 걸로 나온 사탄과의 대결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로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성경의 텍스트상으로나 실제 역사로나 바리새파였던 바울이 영화 속에서는 젤롯당으로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그 지점에서 스콜세지는 갈등합니다. 사탄이라는 존재가 과연 영적인 차원으로서의 악이기만 한것인지, 아니면 물질적 세계관까지를 지배하고 있는 존재인지.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당대 예수를 핍박한 자들을 좀 더 세밀하게 그려내면서도,그리하여 로마라는 공관복음서에서는 일종의 그림자로서만 나타는,혹은 옹호되기까지하는 체계까지도 예수를 핍박했다는 것을 밝혀냈으면서도 그는 그것들을 사탄과 분리시킵니다. 예수가 '다 이루었다'했을 때, 그 '다 이룸'은 결국 개인적인 문제로'만' 귀결되고 마는 것이지요. 실존주의에 경도된 카찬차키스의 세계관 속에서 그 귀결은 당연하게 여겨질수도 있지만, 개인과 사회사이의 긴밀한 연관성을 추구하는 스콜세지의 세계관 속에서 그 결말은 안이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신자 스콜세지'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지요.

3.그의 전작들의 인물들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언제나 '결핍'되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찰리나 트래비스는 '결핍'되어있고, 그러한 결핍을 메꾸기 위해,혹은 결핍의 결과물로서 '메시아 의식'을 갖게 되지요. 인간의 본래적인 한계와 이상적인 메시아 사이의 간극이 이들의 행동에 분열을 가져오고, 이것의 결과물은 언제나 비극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그리고 이 비극은 개인의 파국으로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사회적 문제로 확대되지요.) 그리고 그것이 스콜세지만의 인간관,세계관이 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그 메시아, 그리스도 자체입니다. 카찬차키스의 논쟁적인 작품을 원작으로 택함으로서 도그마화된 성서의 텍스트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투영시키려 했지만,어찌되었든간에 예수는 '그리스도'인 것이지요. 정해진 결론(예수가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안에서 물론 이 영화는 논쟁적이고, 충분히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완성자이죠. 죄의식에 시달리지만, 그는 그것을 극복해내며, 죄로 범벅이 된 이 곳에서 어떻게든 그것을 뚫고가려는 이(가룟 유다로 대표되고,그리스도를 만나기 이전의 바울에서도 보이는)조차 그 극복에 순응하거나, 동조합니다. 하지만 그 동조가, 그 동조가 이루어짐으로써 맞게되는 화해무드(그로 인해 상실되는 '이곳'의 문제들)가 이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킵니다.

4.물론 이것은 상대적인 것이지요. 맹목적인 신앙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일련의 예수의 이야기들과 이 작품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또한 기본적으로 '신앙'을 전제로 하고 들어가는 기독교라는 틀 안에서만 납득될 수 있는 영화도 아니에요. 스콜세지의 필모에서 이 영화의 완성도는 애매한 지점에 서있겠지만, 예수에 관한 이야기로서 이 영화는 도그마적 교리나 근본주의적 사고를 가진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줄 수 있을 것입니다.


Posted by 회색분자

by 회색분자 | 2005/04/11 01:11 | Display :Goliard's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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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왓따맨 at 2013/09/05 18:24
그런 류의 찌질한 감상과 메시야를 연개시키는 것이야말로 신성모독이지요. 마치 성중독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신앙을 해석하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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